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혔다.그러나 백면무상은 그 이상 일견사 허비를 격분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퍼뜩 머리
에 떠올랐다.저편에서 무슨 말이 또 나오기 전에 얼른 막아 버리려고 선뜻 입을 열었다.”허
형! 내가 정말 잘못했소. 아차하는 순간에 그만 실수를 저질러서 이꼴이 되었으니.”청포객
은 이때 벌써 침상 머리에 놓여 있는 조그만 상 가로 물러서 있었다. 무심코 대들보 위를
쳐다봤다.돌연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허 형! 저것 좀 보시오. 저게 뭣일까?”일견사
허비는 몸을 빙글 돌리면서 음침맞게 날카로운 눈초리로 대들보 위를 노려봤다.뜻밖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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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들보 위에는 두 줄기의 글자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그는 얼굴빛이 금시에 핼쑥해
졌다.청포객이 앞질러서 말했다.”저 글씨는 아마 어젯밤에 여기 침범해서 두 젊은 연놈을
구출해 가지고 도주한 자가 남기고 간 것 같은데.””흐흥!”일견사 허비는 코웃음을 치고 다
시 고개를 돌이키며 호통을 했다.”이봐! 자네는 어떠한 몸차림을 한 자인지 그것도 똑똑
히 봐 두지 못했단 말인가?”백면무상은 일견사 허비가 약간 당황해하는 꼴을 보자 다소
마음이 놓였다. 그제서야 자기 나름의 변명을 적당히 꾸며했다.”이 방에 침범한 자의 신법
(身法)이 어찌나 기기 묘묘하게 빠른지, 내가 번쩍 하는 사람의 그림자 하나를 발견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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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그자의 독수에 걸려 있었소.”청포객이 성급히 물었다.”허 형! 여기 침범해서 저
글씨를 써 놓고 도주한 자가 누군지 아실 수 있소?”일견사 허비는 음침맞은 음성으로 맥빠
진 웃음 소리를 연발했다.”흐흐흐! 그것 참 괴상한 일인데. 어떤 놈이었든 간에, 백면무상이
똑똑히 보지도 못했다는 건 도무지 이상한 일이 아닌가?”백면무상은 결국 섣불리 남의 처
녀 하나를 마음껏 농락해 보지도 못하고 밤새도록 고생만 직사게 했고, 또 거기다가 일견사
허비에게 뺨 한 대를 호되게 얻어맞은 결과밖에 아무 것도 안 되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
록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그러나 일견사 허비가 두 번 다시 놓쳐 버린 두 연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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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만 다행으로 여기고, 가슴 한복판을 짓누르고 있던바윗돌 하나를
내려놓은 듯 후련함을 느꼈다.일부러 슬쩍 물어 봤다.”허 형! 그자가 도대체 누구일까? 이
백면무상은 그놈을 찾아내서 사생 결단을 내야 되겠소.””뭣이라구?”일견사 허비가 여전히
격분을 못 참고 호통을 쳤다. “자네는 왜 이렇게 바보 같은 소리만 하나? 상대방이 자네 목숨
을 살려 두고